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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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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의 저작권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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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96년 말경 한양대학교로부터 ‘한양종합기술원’의 설계를 요청 받았다. 한양종합기술원은 산학협동 연구를 목적으로 당시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건설되는 연건평 약 15,000평 규모의 연구소였다. 부지 위치는 필자가 제안했던 캠퍼스 내의 대운동장 자리로 대학 당국에 의해 결정되었다.
캠퍼스 한복판에 대규모 연구소를 설계하는 이 프로젝트는 대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었으며, 필자로서도 그 동안 여러 설계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필자의 연구실 능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서 상당히 도전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었다.
석·박사 과정의 학생 13명과 함께 작업한 기본설계 기간은 1년 이상 소요되었지만, 설계는 의외로 잘 풀려서 연구소로서의 기능도 합리적으로 정리되었고 건물 외관의 경우도 균형 있게 계획되어 건축미관도 뛰어났다.
건물 기본설계가 완료된 후 필자는 실시설계를 하기 위해 서너 명의 설계사를 채용할 것을 대학에 건의하였다. 이미 2년 전에 필자가 대학도서관을 설계했을 때도 직원 2명을 채용해 대학 설계실과 협력하여 별 문제 없이 실시설계를 진행하였으며, 그 도서관은 당시 완공 단계에 있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사무처에서는 실시설계를 입찰을 통해 외주를 주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건축설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실시설계를 담당할 설계사무소의 선정을 사무소의 능력도 파악하지 못하는 단순한 입찰로 정하겠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결국 이 과정을 통해 Y건축설계사무소가 선정되었다. 이 설계사무소는 내세울만한 건물 하나 없는 들어보지도 못한 사무소였다. 나는 이러한 사무소를 끌어들인 대학 당국에 무척 불만이었지만, 설계자로서의 책임을 갖고서 실시설계를 계속적으로 검토 진행시켰다. 실시설계가 완료된 후 1998년 봄에 대학에서는 착공식 행사가 있었다. 필자는 착공식 행사에 참석한 많은 인사들 앞에서 당 건물의 설계자로서 건물설계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하지만, 착공식 이후에 건축공사가 계속 연기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대학 당국으로부터 공사비가 부족하니 건물 규모를 반으로 축소하여 설계를 해 달라는 주문이 왔다. 나는 설계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부족한 대학의 토지 여유를 감안할 때, 건물 규모를 축소하는 것보다는 그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미 설계된 건물을 단계적으로 건설하던지 혹은 증축을 고려한 계획을 다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학 당국으로부터는 건물을 반으로 줄이기 싫으면 손을 떼라는 식의 답변이 왔다. 나는 무척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 없어 이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 뒤에 공사현장을 지나던 필자는 필자가 설계한 건물과 아주 비슷한 외관을 한 건물 투시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용을 알아보니, 그 동안 대학은 Y건축설계사무소에다 새로운 설계를 의뢰했고, Y사무소는 필자가 설계한 건물의 규모를 적당히 축소해서 설계를 완료하여 공사에 들어간 것이었다. 규모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많은 건축 계획상의 내용들이 건축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변경된 것을 봤을 때의 참담한 심정은 설계를 안 해 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나는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할 생각도 했지만 이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면 학교가 여러모로 난처해질 것이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건물은 완공되었다. 그때까지의 상황전개 자체도 무척 불쾌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필자의 설계가 왜곡되어서 2류 건물로 전락된 것을 매일 출퇴근하면서 지나치게 되는 것은 더더욱 괴로운 일이었다.
이 불쾌한 일들을 잊고자 노력하는 와중에, Y사무소는 이 건물을 건축문화대상에 출품했고 입선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중 건축부문에서도 입상했다. 남의 설계를 도용한 것도 모자라 공식적으로 상까지 타는 파렴치함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수상을 취소하고 없던 것으로 할 것을 Y사무소 측에 종용했지만, 그들은 고용한 변리사를 통해 자신들이 처음부터 설계한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내용의 회신을 보내왔다. 그 동안 필자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고, 결국 Y
사무소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하기로 하였다.
쉽게 생각하였던 재판은 만 2년 이상을 끌게 되었고, 그 동안 사건을 담당한 부장판사가 3명이나 바뀌었다. 이렇게 재판이 길어지게 된 까닭은 형사소송을 하게 될 시기를 놓쳐 민사소송으로 가게 된 것이 주 요인이었다. 또한, 설계를 100% 베낀 것이 아니라 적당히 축소해서 설계를 변경시킨 것에 대하여, 건축설계에 대한 전문가가 없는 사법부가 판례가 없는 상태에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침내, 법원에서 2003년 7월 31일자로 강제조정을 권고하였고 그 내용은 피고로 하여금 피해보상금 6,000만원을 원고에게 지급하고 중앙일보, 건축사지, 그리고 한양대 건축동문회지에 해명서를 내는 것이었다.
본래 필자가 소송을 하게 된 주된 목적은 건축가의 지적재산을 침해한 자들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를 판례로 남기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송이 길어져 필자는 이미 지쳐있었고, 강제조정도 판결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변호사의 권고에 따라 사법부의 강제조정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피고가 필자의 설계를 무단으로 도용한 것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정식 판결을 받아 이를 판례로 남기지 못 한 것은 무척 아쉬웠다. 필자가 긴 재판 과정을 겪으면서 놀란 것은 건축설계도용에 대한 판례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피고 측이 끊임없이 위증을 하고 거짓 증거를 내놔도 처벌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법체계는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필자는 우리 사회의 부도덕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지 이번 일로 새삼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러한 경우가 우리나라 건축계에서 실재로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자신의 지적재산을 보호하려면 건축가 각자가 자기 권리를 찾도록 실질적인 노력과 행동을 해야 할 것이며, 또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제도도 반드시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문화 111호, korn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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