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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n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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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축가의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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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한국은 역대 월드컵 사상 초유의 성적을 내면서 세계 4강의 신화를 이룩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월드컵은 돌이켜 본다면 그것은 가슴 벅찬 것이었고 우리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었지만 대한민국의 한 건축가로서는 지난 월드컵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을 갖고서 살아갈 것 같다.
1999년 11월경 서울시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건축 관련 상의 수상경력이 있는 본인에게 서울시가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을 화장실 문화를 선보일 예정이니 그 대열에 참가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담긴 것이었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서울시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업의 일부에 참여해서 한몫을 당당히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니. 사실 그 보수는 그때 느끼고 있던 막중한 사명감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것이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한 건물만 지어줄 수 있다면 본인의 사비를 털어서라도 해주고 싶었다.
한 달 남짓이라는 짧은 설계 기간이 주어졌다. 그 비용과 기간에서 한번 계약 자체를 다시 고려해 볼 수밖에 없는 경우였지만 서울시의 좋은 뜻을 생각해서 모든 조건을 무조건 수용하고 최선을 다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한 달 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안을 만들었다. 결국 일을 모두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그만큼 큰 보람도 따랐다. 마지막 날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서울 시청에 도면을 납품하면서 느꼈던 새벽 공기는 얼마나 시원하던지.
납품 후에는 모든 것이 잘되리라 믿었다. 서울시가 깊은 관심을 갖고 직접 관여하여 모든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니 어련히 잘될 것이라 믿었다. 봄에 개시할 것이라는 공사일정은 무척 궁금했고 또 공사감리도 누가 할지 궁금했지만 공연히 바쁘신 분들에게 누가 될 것 같아 물어보고 싶어도 참기로 했다. 사실 감리는 꼭 직접하고 싶었지만 서울시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나의 예상과는 크게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서울시가 서대문구에 모든 것을 위임해서 시공을 시작해서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현장에는 이미 기초와 지중보 등이 설치된 상태였는데 현장에 가보자마자 설계안의 일부가 상당히 변화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설계안으로 변화시킨 것이 아니고 일부를 잘라서 없애고 또 어느 부분끼리는 붙인다든지 해서 초기의 설계안을 임의로 변형시킨 것이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작태였다. 곧바로 서대문구의 담당자를 만나보았다. 그에 따르면 민원이 발생하여서 조금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본인도 이미 설계 초기부터 새로운 화장실이 들어온다는데 대해서 민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것은 설계안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화장실 건립자체에 대한 것이었기에 도대체 이런 부분적인 변경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궁금증을 풀 수는 없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저 이 사태를 모른 척 묵인해 주느냐 아니면 문제삼느냐 이었다.
이 일로 변호사 친구를 만나 조언을 구하게 되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그의 충고는 그저 잊으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기기 힘들 것이고 부분적인 변경을 했다고 치더라도 그것을 갖고서 무슨 큰 강제적 조치를 얻어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긴 소모전이 될 것이고 거기에 투입될 시간과 경비가 있다면 그것을 더 발전적인 곳에 쓰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의 말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사실들이었다. 스스로도 이런 법적인 투쟁의 결과가 그렇게 기대할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의 생각 끝에 이번만은 그런 상식적인 이해계산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싸움은 예상대로 2년여의 시간을 소모시키는 긴긴 것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의 명분상 그들에게 압승했지만 실리적으로는 큰 소득이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 법원에 가기 앞서서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를 통해서 진행된 저작권 분쟁 조정절차에서 저작권 관련 전문 변호사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조정부는 서대문구청의 변경행위를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높다고 의견을 내면서 당사자간의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였고 본인과 서대문구청은 기왕에 진행중이던 건물을 철거하고 원설계안대로 재시공하는 것으로 문제를 종결지었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은 계속 공사를 진행했고 건물은 그들의 뜻대로 완성됐다. 곧이어 서울 지방법원에서의 2라운드에서 판사는 이미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서 의견을 낸 내용대로 서대문구청의 잘못은 인정했지만 차마 용기 있게 건물은 철거시키지 못했고 대신 보상금조로 설계비 정도의 금액을 보상받을 것을 판결했다. 결국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써 그 길고 길었던 재판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말았다.
이 재판은 도대체 건축가의 설계행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 기회였다. 이번 재판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 하나는 본인이 제기한 사건과 같은 경우가 본인 이전에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들조차 음반이나 책이 아닌 건축물을 들고서 저작권 분쟁 조정을 신청한 것에 대해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위원은 저작권법상 건축저작물이 명백히 법조문에 들어가 있지만 건축저작물을 갖고서 하는 첫 사례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계속 그저 그렇게 체념하면서 건축가의 지위와 사회적인 역할정립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건축문화는 지금 이대로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은 계속 더 축소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이미 문화적으로 상당히 형편없는 도시들과 현대 건축문화를 함께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한국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우리 모두를 점점 더 형편없는 환경 속에 놓이게 할 것이다. 저작권문화, kor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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